【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스미야 유적 (속칭, 시이마)


스미야 유적 (속칭, 시이마)01

스미야 유적 (속칭, 시이마)02

스미야 유적 (속칭, 시이마)03

스미야 유적 (속칭, 시이마)04

스미야 유적은 대강 14-17세기 초기 경의 마을 유적이다.
1982년 두 번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14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수혈식 주거 유적지 1기와 16-17세기 초기로 추정되는 평지 주거 유적지, 포석 주거 유적지, 원형상태의 건물 유적지, 수혈로 우물 등 옛 건축의 잔존물이 검출되었다. 유물로는 토기 조각, 석기(돌추, 맷돌), 조개류 제품(조개 추, 조개 숟가락), 철제품(작은 칼, 단도,못), 옛 동전(기네이겐포, 무몬센), 유리구슬, 탄화 보리, 쌀, 짐승뼈, 조개 껍데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동일 유적에서 수혈-평지-포석 주거 유적이 연대차를 보이면서 명료하게 옛 건축의 잔존물이 검출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나 주거 형태의 변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이 땅은 1629년에 자이반카이야가 설치된 장소이기도 하다. 자이반이란 섬을 지도 감독하기 위해 류큐 왕부가 파견한 관리직을 말한다. 보통 2년을 임기로 교체 근무하였다. 체류 중에 사용했던 기숙사는 자이반카이야라고 불렸다. 1879년 3월에 번을 폐지하고 현을 배치한 직후에는 파출소가 설치되어 오키나와현 체제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그 후 미야코섬 관리부서가 개설됨에 따라 청장관사, 지청장관사, 미야코민정부지사공사, 미야코군도정부지사공사,류큐정부미야코지방장공사로써 중용되었다.
위와 같이 이 사적은 14-17세기 초기의 마을 유적으로써, 구 번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정치의 중심으로써 민중의 삶과 직접 관련되는 여러 제도의 변천을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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