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유적

【시 지정:사적】아라후 유적

아라후 유적 (2800년 전- 1900년 전)은 미야코섬 동부에 있는 아라구스쿠 해안의 모래사막에 형성된 무토기기인 사키시마 선사 시대 (조몬 시대 후기- 야요이 시대)의 유적이다. 이 유적은 길이 800m 정도의 북쪽에 접한 모래사막에 있다. 전면 해역에는 산호초가 […] read more – >

【시 지정:사적 】우푸다티 우푸투누 먀카(묘지)

“우푸다티 우푸투누 먀카”는 15세기 후반에 미야코섬의 수장을 맡았던 우푸다티 우푸투누의 묘지로 추측되고 있다. 사방을 장방형으로 잘라낸 석회암으로 둘러싸고 그 위에 덮개 돌을 올리는 “먀카”라고 불리는 미야코섬 특유의 묘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매장되어 있는 우푸다티[…] read more – >

【시 지정:사적 】구 니시나카 공동 제당공장 유적

구 니시나카 공동 제당공장 유적은 미야코 섬의 기간산업인 제당업을 상징한다. 오키나와 현내에서도 드물게 볼 수 있는 1920-1930년대의 제당 공장 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2013년 6월에 정부 등록 유형 문화재에 등록된 “구 니시나카 공동 제당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겐류36년오나미(乾隆三十六年大波)”비석

요나하 마에하마 후방의 구릉지(속칭: 마에야마) 에 높이 64cm, 폭 29cm, 두께 14cm의 산호 석회암을 가공한 비석이 설치되어 있다. 전방의 비문 우측에는 “겐류(乾隆) 36년3월10일 오나미(大波)”, 중앙에는 “미야구니 신자토 스나가와 도모리(宮国新里砂川友[…]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독일 상선 조난 비석

ドイツ商船遭難之碑

1873년 독일 상선 로버트슨호가 푸저우에서 호주를 향해 출항했으나, 태풍을 맞아 미야구니 앞바다의 커다란 급류에 좌초되어 난파했다. 미야구니 사람들은 사나운 파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릎쓰고 그들을 구조하여, 34일간 친절하게 돌보며 귀하게 대접하여 본국으로 돌려보[…]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아마가

アマ井

역사서『요세이구기雍正旧記』에 “빗물의 우물, 동굴 우물로 발굴 연도가 불분명하다”고 기재되어 있다. 동쪽의 아나가와 함께 미야구니 주민들의 소중한 수자원이었다. 1956년부터 1962년 경까지 펌프를 사용하여, 구 우에노 마을 내의 간이수도로써 물을 공급했다. 마을 주[…]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아나가

アナ井

역사서『요세이구기雍正旧記』(1727년)에 “동쪽 동굴 내의 하천의 발굴 연도는 명확하지 않다”고 쓰여 있다. 미야구니 마을 감찰관리소의 동쪽에 위치하여 당시 “아가가”라고 불렸다고 한다. 수도가 보급될 때까지는 미야구니 주민들의 생활을 지탱하는 귀중한 수자원이었다. 밤[…]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고진미가가마 우타키

好善ミガガマ御嶽

역사서『미야코지마 기지 시쓰기宮古島記事仕次』에 “구바카 아즈의 딸인 후몬 고진”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류큐사람인 다마구스쿠는 구바카 아즈의 외동딸인 후몬 고진에 반해 사귀다가 아기가 생기게 되었다. 다마구스쿠가 야에야마에서 돌아왔을 때, 밤에 고진이 우는 아기에게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데마카 성터

テマカ城跡

구스쿠베 아자 보라의 히가시헨나자키에서 두유먀가 돌을 던져 하룻밤에 돌담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다이쇼시대, 1912-1926년 경 높이 180cm-210cm의 돌담이 존재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전후의 토목 공사 재료로 이용되어 거의 철거되었다. 우타키에 모신 신[…]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우부타키 성터

大嶽城跡

14세기 중순, 미야코섬에 세력을 떨쳤던 오나하바루에 의해 멸망당한 우부타키 아지의 성터이다. 성터공원 내 동쪽에 있는 우타키가 우푸유타키이며, 피기타리유누누스라는 신을 모셨다. 피기타리는 아지의 장남이고, 전란 상황을 한탄하며 농사를 지었다. 요나하라루와의 전쟁에서 […] read mor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