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소개
【미야코지마시 지정:무형 민속】도모리 사자춤
사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마을의 장로에 따르면 약 250년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역병, 화재, 가뭄 등이 발생하면, 모두 악마의 소행이라고 여겼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서 90cm 정도의 막대기를 들고, 사자를 선두로 해서 길가의 돌[…]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무형 민속】우루카 구이차
구이차는 미야코 전지역에서 옛부터 전래된 춤이며, 야외에서 집단적으로 추는 원형춤이다. “목소리를 맞추어”, “신의 영혼을 기원한다”고 여겨졌다.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을 남녀노소가 한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원래는 우타키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기우제를 행하는 풍[…]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역사 자료】쇼에이 씨 모토무라 일가 관계 자료
이름 첫 글자에 “조朝”자를 가진 일가를 미야코에서는 “쇼에이 씨”라고 부른다. 이는 오키나와 본도의 쇼 씨와 명맥을 함께 하는 것이다. 몇 개의 일가가 있지만, 지금 출신이 명백한 것은 다음의 두 일가 뿐이다. 하나는, 우라소에 외카타 조시와, 다라마의 운타바루 씨와[…]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역사 자료】주도 씨 나카소네 일가 관계 자료
주도 씨의 조상은 나카소네 두유먀인데, 막부 말기 때에는 시라카와 씨와 더불어 미야코를 양분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던 유서 깊은 집안이다. 나카소네 두유먀는 요나하바루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미야코를 통일한 메구로모리 두유먀의 고손자이다. 시라카와 씨 삼대째인 우푸다티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서적】산업계 은인 기념비
1925년 7월 미야코 신사가 건립되었을 때, 미야코 산업의 기초를 다진 시모지 페친 게이콘, 우루카 페친 시오쿠, 이나이시 도지 세 명을 널리 표창하기 위해 경내에 세운 것이다. 묘비는 세로 264cm, 가로 63cm, 폭 27cm의 직육면체이며, 콘트리트로 만들어졌[…]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서적】온가와사토누시 페친의 묘비
막부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존하는 묘비로써는 비교적 오래된 것이다. 모래암석(높이 62cm, 가로 33cm, 폭 위 5-14cm, 아래 17cm)이 재료로써 사용되었다. 묘비에는 오른쪽 위에서부터 “支流長真氏恩河仁也、乾隆年間卒。向姓恩河里之子親雲上墓、同治十一年壬申在[…]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무형 민속】도모리 구이차
옛날에 분먀(마을 관리소)에서 직물짜기를 해야 했던 여성들은 암초에 부딛히는 하얀 파도가 조후(고급 마포) 무늬로 보이는 것에 착목했다. 바닷가의 모래가 좁쌀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구이차아구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낮의 노동에서 해방된 젊은이들은 밤에 모여 남녀의 연정[…]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유형 민속】구스쿠베의 아기이스(힘겨루기를 위한 돌)
전쟁 전에는 각 마을에서 청년들의 힘겨루기 대회가 자주 열렸다. 씨름도 그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의 역도에 해당하는 것이 “아기이스”이다. 각 마을의 청년회장(현재, 마을회관)에는 큰 돌과 작은 돌, 두 개의 아기이스가 갖추어져 있었다. 마땅한 오락이 없었던 옛날, 농[…]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서적】모토무라 일가 “호혼” 비
이 “호혼(報本)”의 비의 석문은, 쇼타이 왕 시대의 삼사관인 쇼 유코(기완 왜카타 조호)가 일족(쇼에이 씨)이었던 시모지 마을 촌장 쇼 조쇼(모토무라 조쇼, 재임 1851-76년)에게 보낸 것이다. 이 비가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비석은 직육면체의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건조물】히라라 제일 초등학교의 정문과 돌담
히라라 제일 초등학교의 돌담은 1932년 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정된다. 건축되고나서 73년 경과한 것이다. 현재, 학교 부지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 중에서 남쪽은 부지를 확대한 결과 사라졌지만, 당시의 정문을 포함한 세 방향의 돌담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포석 기술[…] read mor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