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지마시 관련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아나가

アナ井

역사서『요세이구기雍正旧記』(1727년)에 “동쪽 동굴 내의 하천의 발굴 연도는 명확하지 않다”고 쓰여 있다. 미야구니 마을 감찰관리소의 동쪽에 위치하여 당시 “아가가”라고 불렸다고 한다. 수도가 보급될 때까지는 미야구니 주민들의 생활을 지탱하는 귀중한 수자원이었다. 밤[…]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유형 민속】아카나구

赤名宮

아카나구에 모신 신은 우에카누스라고 부른다. 공사 번영과 관직 영달의 길로 인도하고 성공을 개척하는 영감의 신이다. 네노하누우마티다가 낳은 열두 명의 신들은 이케마섬의 우바루즈(우바르즈우라세리쿠타메나우노마스), 시모지의 아카자키 우타키(오요노누시), 히라라의 아쓰마마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고진미가가마 우타키

好善ミガガマ御嶽

역사서『미야코지마 기지 시쓰기宮古島記事仕次』에 “구바카 아즈의 딸인 후몬 고진”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류큐사람인 다마구스쿠는 구바카 아즈의 외동딸인 후몬 고진에 반해 사귀다가 아기가 생기게 되었다. 다마구스쿠가 야에야마에서 돌아왔을 때, 밤에 고진이 우는 아기에게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유형 민속】마야 우타키

真屋御嶽

미야코 조후(고급 마포)의 창제자인 이나이시와 그의 남편 시모지 페이친 신에이(통칭 모테아가라)를 모신 곳이다. 신에이는 미야코의 우두머리였던 나카소네 두유먀의 요나구니 우니토라 정벌에 종군한 모테아니갸모리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 스가마 마을의 윤추로써 왕정부에 갈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유형 민속】쓰누지 우타키

ツヌジ御嶽

우후유누누스를 모신 아카자키 우타키의 기원 장소이다. 매년 음력 6월, 8월, 10월의 갑오 날에 시제를 행하며, 음력 11월에 기원제례를 행한다. 우타키는 다음과 같은 설에 유래한다. 옛날, 아카자키 우타키의 축제일에 외출하였다가 도중에 호우를 맞게 되어 큰 바위 그[…]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데마카 성터

テマカ城跡

구스쿠베 아자 보라의 히가시헨나자키에서 두유먀가 돌을 던져 하룻밤에 돌담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다이쇼시대, 1912-1926년 경 높이 180cm-210cm의 돌담이 존재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전후의 토목 공사 재료로 이용되어 거의 철거되었다. 우타키에 모신 신[…]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유형 민속】아카자키 우타키

赤崎御嶽

아카자키 우타키에 모신 신은 우후유누누스 두유먀라고 한다. 농사의 풍작을 다스리는 신으로, 네누하누우마티다가 낳은 12 신 중에 하나로 전해진다. 시제는 매년 세 번, 갑오의 날에 행한다. 아카나구와 함께 시모지 지역의 근원이 되는 장소로써 옛부터 섬 사람들의 신앙이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우부타키 성터

大嶽城跡

14세기 중순, 미야코섬에 세력을 떨쳤던 오나하바루에 의해 멸망당한 우부타키 아지의 성터이다. 성터공원 내 동쪽에 있는 우타키가 우푸유타키이며, 피기타리유누누스라는 신을 모셨다. 피기타리는 아지의 장남이고, 전란 상황을 한탄하며 농사를 지었다. 요나하라루와의 전쟁에서 […]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고문서】가와미쓰가의 족보

河充家の系図

가와미쓰 씨란 가와미쓰 우푸투누를 원조로 삼는, 이름이 “真”자로 시작하는 일가를 말한다. 족보를 보관하고 있는 이는 우푸투누의 자손, 스가마 마을의 마쓰무라 씨이다. 족보는 1대부터 12대까지 인물의 생년월일, 직함, 사망 연월일이 기입되어 있다. 서체도 해서, 초서[…] read more – >

【미야코지마시 지정:사적】우우니노슈 우타키

御船の親御嶽

『미야코지마 기지 시쓰기』에 “노자키 미쓰사랴는 남쪽 섬에서 도망갔다가 돌아왔다”고 하는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우우니의노슈는 선장으로써 류큐에 갔다가 돌아올 때, 폭풍을 맞아 남쪽 섬, 아후라라는 곳에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우우니노슈는 살해당했으나, 승무원이었던 노[…] read mor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