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지마시 지정:유형 민속】마야 우타키


마야 우타키

미야코 조후(고급 마포)의 창제자인 이나이시와 그의 남편 시모지 페이친 신에이(통칭 모테아가라)를 모신 곳이다. 신에이는 미야코의 우두머리였던 나카소네 두유먀의 요나구니 우니토라 정벌에 종군한 모테아니갸모리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 스가마 마을의 윤추로써 왕정부에 갈 때, 폭풍을 맞아 명나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우연히 명나라에 와 있던 류큐왕조의 진공선을 타고 류큐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때 또 폭풍을 만났다. 이 때, 배의 줄이 끊어져 배는 침몰 직전이었다. 모테아가라는 파도가 사납게 몰아치는 바다에 뛰어내려 필사적으로 매달려 활약한 끝에 줄을 바꾸었다. 결국 진공선을 타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이 왕에게도 전해져 쇼에이왕은 신에시를 초대하여 칭찬과 더불어 시모지 페이친의 위계를 하사했다.
이나이시는 나키다테 씨, 우에치 윤추의 딸로 태어나 훗날 신에이의 부인이 되었다. 남편의 출세에 감격한 이나이시는 보은을 결심한다. 그녀는3년간 고생하면서 연구에 몰두하여 아야사비후(마직물) 제조에 성공하였고, 1583년 이를 쇼에이왕에게 헌상하였다. 디헤이후라고도 불리는 아야사비후는 미야코 조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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